글로벌 무역(특히 APEC·자유무역 vs 보호무역 논쟁 현황과 한국의 중재 가능성

올해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자유무역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커지고 있다. 미국이 2010년대 이후 다자 협력에서 벗어나 ‘미국 우선’ 기조를 강화하고 관세를 무기로 삼아 세계 무역 질서를 재편해 온 흐름 속에서, APEC은 공급망의 안정성과 규범의 재정립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중심축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은 다자주의 배격과 미국 우선주의를 핵심으로 요약된다. 미국은 2017년 8월 301조를 바탕으로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와 기술 이전 강요에 대한 조사를 명령했고, 2018년에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확대했다. 당초 다자 무역협정 체제의 확산을 통해 전세계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보급해 온 전통적 방향과 달리, 미국은 나라 간 규칙의 적용과 군사적·경제적 힘의 결합으로 국제 질서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지속해 왔다. 이러한 변화는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재협상과 다자 협정의 축소로 이어졌으며,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이후에도 미국의 무역정책은 ‘다자적 규범의 축소-미국 우선’ 방향으로 굳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APEC의 본질은 이 흐름 속에서도 중요한 변화를 맞고 있다. 21개 경제체로 구성된 APEC은 완전한 자유무역협정이 아닌 개방적 지역주의를 지향하며, 의사결정은 만장일치에 가까운 합의 방식이 특징이다. 비공개 논의와 기업인자문위원회가 협상 과정을 주도하는 경향이 있어, 일반 시민이나 노동자, 농민 같은 공공의 이익 주체의 접근은 제한적이다. 특히 올해 회의가 기후 위기와 공급망 회복력 같은 글로벌 의제와 맞물려 진행되다 보니, 자유무역의 이익을 어떻게 공공재 수준으로 확장할지에 대한 논의가 더욱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인구의 약 40%, 경제총량의 약 60%를 차지하는 이 포럼의 정책은 대기업의 무역과 글로벌 가치사슬을 촉진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 등 공익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한국은 이번 회의에서 미국과 중국, 일본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며 중재자 역할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있다.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시리즈를 통해 제시된 여러 진단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분열된 질서를 조율하는 중재자 위치를 활용해 공급망의 안정성을 공공재로 전환하는 방향으로의 구체적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는 인식이 제시된다.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될수록,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 등 주요 동맹국과의 협력 채널을 유지해야 한다는 균형 전략이 필요하다. APEC이 기업 중심의 협상 구조를 지속하는 한편, 한국이 시민사회와의 대화를 강화하고, 공급망의 다변화와 지역 경제의 포용적 성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한다면, 세계 무역 질서에 작은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2025년의 맥락에서 보면, 미국 우선주의와 다자협력의 충돌은 단기적 이슈를 넘어 장기 정책 방향성의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시대의 무역정책은 다자주의와 지역주의의 축을 재배치했고,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규범의 확산이 더 이상 자동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반면, APEC은 여전히 자유무역을 핵심 가치로 삼되, 공급망의 탄력성과 인간 중심의 대책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 전환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이는 기후 위기와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지는 현 시점에서 더 필요하다는 분석이 제시된다.

APEC 이해를 돕는 관점에서 보면, 이번 회의의 맥락은 단지 경제적 이익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가치의 재정립으로 확장된다. APEC의 의사결정 구조가 비공개적이고 기업 이익의 대표가 중심에 서 있는 상황에서, 시민사회와 노동자, 농민 등의 목소리를 어떻게 정책 설계에 반영할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남아 있다. 세계 경제의 중심축으로 작용하는 이 포럼에서 기후 문제와 공급망의 재정비를 논의하는 자리는 시민 참여의 확장과 규범의 재정립에 대한 요구를 키우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은 공급망의 안전성을 공공재로 다루는 방향으로의 정책 설계, 그리고 국제 연대와 시민사회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글로벌 무역의 방향성을 보다 포용적으로 만드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2025년 APEC 회의는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사이의 전통적 논쟁을 재점화하는 한편, 공급망의 안정성과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새 공공재 개념을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다자협력 축의 약화 속에서도 한국은 중재자 역할과 국제 연대의 강화, 시민사회와의 대화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APEC의 개방적 지역주의를 유지하되, 사회적 이익을 더 잘 반영하는 규범과 기준을 구축하는 것이 향후 글로벌 무역 질서를 안정적으로 이끄는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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